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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조상은 선비족으로 모용씨의 쫄따구.

 거란의 조상은 선비족으로 모용씨의 쫄따구. ==== 청장관전서 제22권 / 편서잡고 2(編書雜稿二)동시 스크롤 송사전(宋史筌) 요열전(遼列傳) [DCI]ITKC_BT_0577A_0250_010_0020_2000_005_XML DCI복사 URL복사 야율경(耶律璟)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술률(述律)이니 덕광(德光)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소씨(蕭氏)이다. 그의 선조는 선비족(鮮卑族)으로 모용씨(慕容氏)에게 격퇴되어 세 부족으로 나누어졌는데 거란(契丹)은 그 중의 하나이다. ===== //그렇다면 광개토비에 모용선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이유를 알수있음. '비려(=패려=거란의 조상)'에 대한 언급이 광개토비에서  맨 첫 파트에 나옴. 광개토가 게임 스타트 딱 하자마자 염수(=시라무렌하=대요수)의 상류의 비려 부족 수백 텐트 정벌해서 걔들을 고구려의 속민으로 만들고  걔들이 잡아간 고구려 백성들 데리고 이려 이려 돌아오며 요동군 양평현 도로를 따라 이려 이려 오면서 요동도 순시했다는데 아주 게임 스타트 딱 하자마자 요동이 그냥 광개토 땅임. 당시 모용선비 정권은 모용씨 왕족 , 부여씨 호족, 한漢족 계통 호족들로 구성된 연합 정권이고 얘들의 백성은 바로 비려족이랑 한漢족인데. 그중 비려족이 광개토한테 비전 동맹 툭 켜버리니 모용씨 몰락의 시작이 서서히 다가오는.... 사실상 모용선비 정권의 실세는 모용씨가 아니라 부여씨였을거같고, 그래서 광개토 눈엔 모용씨는 그냥 백잔의 쫄따구 그냥 그 정도로 보였을 듯. 그래서 광개토비에서 서기 407년에 광개토가 보,기 5만 데리고 이려 하고 요서로 어택 땅 찍어서 쏜살같이 가서  사방포위합전으로 모용선비 1만 개갑무사를 요서 한복판에서 싸그리 다 죽여버릴 때 모용선비라는 언급 조차 없음. 그래서 그 서기 407년 부분 이게 백제 친거 아니여? 이러고 학자들이 술렁술렁 이는데. 백제하고 싸웠다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언급이 없을수가없음. 결국 모용선비 아니면 말이 안됨.

갈석과 만리장성의 동쪽 끝과 낙랑군 수성현에 대하여

 갈석이란 말은 해변 바로 앞에 뜬 돌산이란 뜻이다. 갈석은 꼭 산해관 해변가 거기에만 있는게아니다. 황하 하구에도 있었고, 한반도 관미성에도 있는 것이다. 너 한서지리지 위서지리지 수서지리지는 보고 지껄이는거니 갈석이라는게 황하 하구에도 있고 그렇다 꼭 거기에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진시황의 장성은 산해관에서 끝나지않고 요동에까지 이어졌다. 사마천 사기에 그리 나온다. 자, 진서지리지를 보면 낙랑군 수성현에서 진시황의 장성이 시작된다고했다.  근데 진서 선제기(사마중달전)를 보면 위나라 태부 사마중달이 보,기 4만을 거느리고 고죽을 지나고 갈석을 지나고 요수 강물을 건너서 공손연의 요동군의 수도 양평현을 함락시키고 공손연을 추격해서 량수 강물에서 공손연의 수급을 베었다고 나온다. 그러면 사마중달이 이 루트로 이랴이랴 지나갈 때 낙랑군도 자연히 사마중달에게 먹힌거네? 그러면 낙랑군 먹었다는 말이 있어야되는데. 그런 언급은 전혀 없다.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쪽의 부여 고구려 고조선이 중국 역사라는 개소리고,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요동에까지 이어져있다느거는 송나라 시대 고지도에도 이미 그려져있고 삼국유사에도 그런 말이 나와 이 멍청아. 명나라 때 고지도 보면 산해관 쪽에서 요서를 따라 요동까지 쭈우우욱 목책들을 타다다다다닥 설치했다. 그런것도 다 장성長城이란 큰 개념에 포함된다. 넌 무조건 성이라고 하면 돌로 된 성만 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김유신이나 의자왕이 서로 신나게 따먹은 40여성 그런 것들이 무슨 다 돌로 된 성이겄냐? 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