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조상은 선비족으로 모용씨의 쫄따구.

 거란의 조상은 선비족으로 모용씨의 쫄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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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 제22권 / 편서잡고 2(編書雜稿二)동시 스크롤


송사전(宋史筌) 요열전(遼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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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경(耶律璟)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술률(述律)이니 덕광(德光)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소씨(蕭氏)이다. 그의 선조는 선비족(鮮卑族)으로 모용씨(慕容氏)에게 격퇴되어 세 부족으로 나누어졌는데 거란(契丹)은 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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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광개토비에 모용선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이유를 알수있음. '비려(=패려=거란의 조상)'에 대한 언급이 광개토비에서 


맨 첫 파트에 나옴. 광개토가 게임 스타트 딱 하자마자 염수(=시라무렌하=대요수)의 상류의 비려 부족 수백 텐트 정벌해서 걔들을 고구려의 속민으로 만들고 


걔들이 잡아간 고구려 백성들 데리고 이려 이려 돌아오며 요동군 양평현 도로를 따라 이려 이려 오면서 요동도 순시했다는데


아주 게임 스타트 딱 하자마자 요동이 그냥 광개토 땅임.




당시 모용선비 정권은 모용씨 왕족 , 부여씨 호족, 한漢족 계통 호족들로 구성된 연합 정권이고 얘들의 백성은 바로 비려족이랑 한漢족인데.


그중 비려족이 광개토한테 비전 동맹 툭 켜버리니 모용씨 몰락의 시작이 서서히 다가오는....


사실상 모용선비 정권의 실세는 모용씨가 아니라 부여씨였을거같고, 그래서 광개토 눈엔 모용씨는 그냥 백잔의 쫄따구 그냥 그 정도로 보였을 듯.




그래서 광개토비에서 서기 407년에 광개토가 보,기 5만 데리고 이려 하고 요서로 어택 땅 찍어서 쏜살같이 가서 


사방포위합전으로 모용선비 1만 개갑무사를 요서 한복판에서 싸그리 다 죽여버릴 때 모용선비라는 언급 조차 없음. 그래서 그 서기 407년 부분 이게


백제 친거 아니여? 이러고 학자들이 술렁술렁 이는데. 백제하고 싸웠다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언급이 없을수가없음.


결국 모용선비 아니면 말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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